메뉴 건너뛰기

전북노동정책연구원

각종 원고

세계노동절 역사를 돌아보며

전북노동정책연구원2021.05.03 11:05조회 수 75댓글 0

  • 1
    • 글자 크기

민주노총전북본부 공감 29호 : 세계노동절 역사를 돌아보며

 

세계노동절 역사를 돌아보며

 

강문식(민주노총전북본부 부설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chicago_1890.jpg

 

 

 

민주노총전북본부는 전라북도교육청과 세계노동절 계기교육을 시행한다는 내용의 노-정협약을 맺었다. 올해 제131주년 세계노동절을 앞두고 협약에 따라 계기교육을 안내할 수 있도록 교육 자료를 정리하면서 보니 그 유래나 사건의 경과가 다소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188651일 파업이 언제 결정되었는지, 그 파업을 결정한 단체가 누구인지, 파업에 어떤 사람들이 몇 명이나 참석하였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그 사건의 성격을 일차적으로 규정한다. 대개 한국에서 유통 중인 세계노동절의 역사는 배경이 대단히 축약된 채 188651일의 사건으로부터 서술되고 있다. 불명확하거나 서로 상충되는 서술들을 정리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세계노동절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현재적이며, 논쟁적이었다.

 

민주노총에서 발행한 세계노동절 교육지를 비롯해 대부분의 세계노동절 소개 자료는 그 기원을 시카고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찾는다. 하지만 188651일 파업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미국에 존재하던 노동조합연맹(FOTLU), 노동기사단(KOL), 세계노동자협회(IWPA), 노동조합연합(CLA) 등 여러 단체의 협력으로 메이데이 파업이 이루어졌지만 그 과정에는 연대 뿐만 아니라 갈등도 있었다. 이를 살펴보려면 이들 노동조합의 성격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세계노동자협회와 노동조합연합은 아나키즘-생디칼리즘 경향의 노동단체였다. 노동조합연맹은 미국노동총동맹(AFL)의 전신으로 백인 숙련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삼았다. 조직 대상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국노동총동맹은 훗날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노총이 된다. 노동기사단은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단체로 노동조합연맹이 배제한 미숙련노동자, 흑인, 여성노동자를 적극 조직한다. 하지만 비밀조직으로 운영되었고, 그 지도자는 정치투쟁보다는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시카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부각된 것은 시카고(일리노이) 일대가 노동운동 내 좌파적 경향-세계노동자협회, 노동조합연회-이 강세였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18868시간 노동제 요구 파업 역시 세계노동자협회, 노동조합연합 가장 적극적이었다.

 

1886년 메이데이에 관해 그 날의 파업을 누가 주도했는지에 대해서는 출처가 불명한 다양한 서술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188451일 미국의 방직노동자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쟁의를 시작하고, 각 노조가 이에 호응하여 총파업을 단행했다. 2년의 시간이 지난 188651일 시카고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연합회를 중심으로 [...] 총파업이 전개되었다. - 민주노총 교육지(2021)

 

19세기 후반 미국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운동 또한 발전했다. 1869년 펜실바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결성된 노동기사단이 그 처음이었다. 노동기사단의 뒤를 이어 미국 노동총연맹이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1884년 제4회 대회에서188651일부터 18시간 노동을 법률로 정하게 하도록 노력한다고 결의하였다. - 작성자 미상

 

1886.5.1, 미국노동조합총연맹(AFL), 시카고에서 노조원들이 '8시간 근로'를 요구하며 총파업 고용노동부

 

각 내용이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대단히 정치적인 편향이 반영되어 있다. 먼저 내가 찾을 수 있는 자료를 통해 확인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88410월에 열린 노동조합연맹(FOTLU) 4차 총회에서 188651일까지 8시간 노동제를 시행하라는 결의문을 채택했고, 파업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총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는 1885년에 이루어졌는데 노동조합연맹 소속 78개 노동조합 중 69개 노동조합이 51일 파업을 지지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서술은 고용노동부의 한 줄 요약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역사는 그리 단순하게 구성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연맹은 1886년 총파업을 결정했지만 정작 총파업 준비에는 손을 놓고 있었고, 오히려 적극 조직에 나선 것은 세계노동자협회와 노동조합연합, 노동기사단이었다. 여러 자료에는 뉴욕, 시카고, 신시내티, 밀워키 등지에서 세계노동자협회, 노동조합연합, 노동기사단, 노동조합연맹이 결합된 ‘8시간 노동제 연합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당시 미국사회에서 ‘8시간 노동제는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효과적인 구호였고, 그 요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와 상관없이 각 조직들은 조직을 확대하기 위해 연합전선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노동조합이 갖고 있던 성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8865월이 다가오자 노동조합연맹과 노동기사단은 성조기를 들고서 실내 집회를 했고, 세계노동자협회와 노동조합연합은 길거리로 나서 적기를 들고서 라-마르셰즈(프랑스 혁명가)를 불렀다고 한다. 추측컨대 18865월 미국 노동조합들 사이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사이의 거리, 딱 그만큼의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구도는 일견 박근혜 퇴진 촛불 국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한국노총 역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2016~2017 촛불을 설명할 때, “한국노총, 박근혜 퇴진 투쟁이라고 언급하지 않는다. 한국노총의 본질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용노동부의 메이데이 설명은 틀렸다. 작성자 미상의 글도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같은 이유로 맥락에서 어긋난다. 민주노총의 교육지는 노동조합연합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맥락에는 어느정도 부합하나 주요 사실관계들이 어긋난다. 188451일 방직노동자가 쟁의를 시작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었고, 노동조합연합은 시카고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직이 아니다. 물론 노동조합연합에는 각 지역 조직이 있었으므로 시카고 지역에는 시카고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연합이 있긴 했겠지만, 문제는 당시 파업이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파업이음에도 이를 과도하게 축소시키는 서술이라는 점에 있다.

 

헤이마켓 사건의 배경이 된 맥코믹 사의 파업파괴 행위에 대한 항의 집회와 유혈진압, 그리고 헤이마켓 사건에 대해서도 필자에 따라 상이한, 혹은 근거를 확인하기 어려운 서술들이 많아 정정이 필요했다. 그 중 가장 뼈아프게 다가온 것은 헤이마켓 사건을 빌미로 사형당한 노동운동가 아우구스트 스피-스의 이름이다.

 

세계노동절 역사를 정리하면서 어거스트 스파이스(August Spies)’로 알려진 노동운동가의 법정 최후 진술의 원문을 참고해 교육지에 실었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으로 시작되는 문장의 원문을 찾아보니 상당한 윤문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다듬고 교정한 것이다. ‘어거스트 스파이스에 대해 찾아보니 독일계 이민자로, 당시 시카고에는 독일계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세계노동자협회는 인종, 국적과 상관없이 전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외쳤고 스파이스역시 이와 같은 활동을 적극 펼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당시에도 미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며 차별받았고, 백인-숙련노동자들에게서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헤이마켓 사건의 배경에는 이와 같은 이민자 혐오가 놓여 있다. 빨갱이 이민자가 폭탄 테러를 했다는 지배계급의 선동은 총파업 열기를 급속도로 식혔고 체포된 8명의 노동운동가가 증거도 없이 재판을 받는 것을 용인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점에서 세계노동절이 동시대적 사건임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한국 사회에 확산되는 이주민 혐오 정서는 민주노총도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만약 헤이마켓 광장에서와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예를 들어 아랍계 이주노동자 집회 중 출처 불명의 폭탄이 터졌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까. 하지만 이런 고민은 그 맥락을 서술하기 벅차 교육지에 담지 못했고 어거스트 스파이스라는 이름 역시 그래도 두었다. 교육지를 발행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독일계 이민자였다면 이름의 한글 표기가 잘못되었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문 위키피디아에 친절하게 발음기호를 /spiːs/라고 표기해두었다. 독일계 이민자이자, 급진 노동운동가였던 아우구스트 스피-는 한국에서 수십 년 동안 제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했던 것이다.

 

131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제작한 이번 교육지는 향후 작업을 위한 초벌 정리 자료이다. 메이데이의 역사는 향후 보다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며 현재적 쟁점을 확인하고, 기존의 우편향적인 서술들을 교정하는 일관된 입장에서의 재서술이 필요하다. 이는 전평과 전노협,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민주노총의 조직적 과제가 되어야할 것이다. 세계노동절 정신은 문자 그대로 인종, 국경, 직종, 신분을 뛰어넘는 전세계 노동자의 연대에 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1
    • 글자 크기
영화 ‘다음 소희’가 담지 못한 현실 (by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차별만 확인 시킨 일용노동자 코로나19 전수검사, 기본권 보장이 가장 훌륭한 방역이다 (by 전북노동정책연구원)

댓글 달기 WYSIWYG 사용

글쓴이 비밀번호
첨부 (1)
chicago_1890.jpg
131.4KB / Download 59
위로